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시키부노 나이시 (문단 편집) == 생애 == 타치바나노 미치사다(橘道貞)와 [[이즈미 시키부]](和泉式部) 오에 씨(大江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 모두 지방관 계급 출신이었는데, 우대신(右大臣) 후지와라노 사네스케(藤原實資)의 일기인 《소우기(小右記)》에는, 남편 미치사다가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에게 신임을 얻어 미치나가 집안의 사무를 도맡아 보던 가신(家臣)이었다고 전해진다. 미치사다가 이즈미노쿠니(和泉國)에 부임했을 당시 아내인 오에노 마사무네(大江雅致)의 딸도 동행하면서 남편의 부임지인 '이즈미'와, 아버지의 관직명 '식부'에서 따온 '이즈미 시키부'로 불리게 되었다. 미치사다는 999년부터 1003년까지 이즈미 지방관에 머물렀으나, 《영화 모노가타리(榮花物語)》에 따르면 1001년 교토에 전염병이 맹위를 떨쳐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당시 [[레이제이 덴노]](冷泉天皇)의 3남 타메타카 친왕(爲尊 親王)은 그 난리통에 이즈미 시키부와 신츄나곤(新中納言)을 비롯한 많은 여성들과 호색한 행동을 벌이다가 결국 1002년 병에 걸려 사망했다고 한다. 즉 이즈미 시키부는 처음에는 남편을 따라갔지만 1~2년 만에 교토로 돌아가 타메타카 친왕의 애인이 된 것이며, 당연히 이들의 관계도 끝난다. 이 사건은 엄청난 스캔들이라서 이즈미 시키부가 부모와 절연당했을 정도였다. 다만 기록에 따르면 남편에게 새 아내가 생기면서 결별한 것이라고 한다. 미치사다가 이즈미 지방관의 임기를 마친 것은 1003년 봄인데, 이미 다음 해인 1004년부터 무츠(陸奧) 지방의 지방관으로 내정되자, 미치나가는 미치사다를 위해 3월 18일에 축하와 송별회를 겸한 연회를 열어주었다고 자신의 일기인 《어당관백기(御堂關白記)》에 기록하고 있다. 또한 미치사다가 임지로 출발한 지 7개월 뒤인 윤달 9월 16일, 뒤이어 교토를 출발하는 그의 처자에게 선물로 옷가지 등을 보냈다고 전한다. 여기에 이즈미 시키부는 포함되지 않았기에 아무리 늦어도 이 무렵에는 이혼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미치사다가 [[도호쿠]](東北)의 무츠라는 먼 변방으로 떠나는 것을 우려해 “원래대로라면/나도 함께 떠났을/무츠 지방의/명소 코로모노세키/그저 말로만 듣네.”もろともに/立たましものを/陸奧の/衣の關を/よそに聞くかな(《이즈미 시키부집(和泉式部集)》 847)라는 와카를 읊는 등 애착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즈미 시키부는 남편인 미치사다가 교토로 돌아온 1003년 타메타카의 남동생 아츠미치 친왕(敦道 親王)의 애인이 되고, 1004년 그로 인해 그의 정실이 친정으로 가출하는 사태에 이르는 등의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1007년 아츠미치 또한 요절하고, 1009년 이즈미 시키부는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요청에 따라 [[이치조 덴노]](一條天皇)의 중궁(中宮) 후지와라노 쇼시(藤原彰子)의 뇨보(女房)로 출사하고, 그곳에서 만난 후지와라노 야스마사(藤原保昌)와 재혼한다. 야스마사는 야마토(大和) 지방관을 거쳐 1020년 단고(丹後)로 부임하자 어머니인 이즈미 시키부도 단고로 동행한다. 한편 아버지 타치바나노 미치사다는 1016년 4월에 사망했다. 한편 고시키부노 나이시는 이즈미 시키부가 단고로 건너가 있을 무렵에 [[후지와라노 쇼시]]의 궁녀로 입궁해 그녀를 모셨는데, 그녀 역시 어려서부터 시와 노래에 능해 "엄마가 대신 지어줬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와카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고시키부노 나이시는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아들이자 쇼시 중궁의 남동생인 관백(關白) 후지와라노 노리미치(藤原教通)의 눈에 들어 아들을 낳게 된다. 《이즈미 시키부집(和泉式部集)》에 따르면, 이때 미치나가는 손자를 낳은 고시키부를 '며느리'라고 호칭하는 글을 써서 이즈미 시키부가 담동했다고 한다. 사실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어머니 토키히메(時姫)도 지방관 계급 출신이라서 무조건 천민이라고 멸시하기도 좀 그랬지만. 후지와라노 킨나리(藤原公成)와 혼인했으며 1025년 11월, 난산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때 고시키부의 나이는 겨우 29세였다. >留め置きて/誰をあはれと/思ひけん/子はまさるらむ/子はまさりけり >먼저 간 딸은/누굴 더 애달프게/생각할는지/어미보다 자식일까/역시 자식이겠지 >《이즈미 시키부집(和泉式部集)》 (485) [[이즈미 시키부]]가 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남긴 와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